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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Cetera/nothing

[투챕터 챌린지] 모차르트 혁명의 서곡 C5,C6

by XoX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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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5 음악, 음악가와 사회

모차르트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음악은 여전히 궁정과 교회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음악과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에 변화가 일어났다. 18세기 초반의 지배적 음악양식은 종교 음악이었지만 후반에 들어서는 세속적 음악이 작품의 질과 양 모두에서 종교 음악을 압도했다. 당시 음악가는 대개 귀족의 궁정이나 성직의 위계질서상 요리사의 아래, 시종 위쯤 되는 지위를 가진 상당히 낮은 하인에 불과했으며 독립적 음악가들은 거의 없었다. 그 시기 귀족 사회에서는 음악적 교양을 쌓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성장하고 있는 세력인 부르주아지가 이를 따라하게 되며 부르주아의 사회 생활을 반영하는 음악에 대한 요구도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음악가들과 작곡가들 역시 중세의 하인 신분에서 벗어나 스스로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부르주아적 전문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당시에도 명성이 자자했던 작곡가 하이든도 생에 대부분을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하인으로 봉직했으며, 그 기간동안 하인의 복장을 한 채로 다른 하인들의 직무도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주인의 허락 없이는 여행도 할 수 없었다.

※ 18세기에는 직접 연주하는 음악이 사회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환대의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에 자극받은 전문 음악가들이 아마추어들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을 판매용으로 내놓게 되었다.

※ 18세기에 피아노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부르주아지임을 입증하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 피아노의 원래이름은 피아노포르테이며, 쳄발로 또는 하프시코드에서 개량된 악기이다.

※ 유명한 교습 지침서의 대가들도 18세기에 등장했다. e.g. 플루트 교본- 크반츠, 바이올린 교본-레오폴트

 

 

Chapter 06 중세의 하인에서 독립적 음악가로

모차르트는 신동이라는 환호를 받으며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자수성가한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 레오파드 그리고 누이 란넬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면서 부자들과 명사들의 연회를 빛냈다. 레오폴트는 아들 모차르트에게 유럽의 궁정에서 장기적으로 봉직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주고 싶어했으나 모차르트는 자라나면서 중세적 하인이라는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큰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1781년 빈에서 마침내 갈등이 폭발하였고 자신을 중세적 하인으로 취급하는 콜로레도 주교를 비난했던 모차트트는 해임되었다. 빈 시절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연주, 학생교습, 다양한 작곡 의뢰(미사곡, 무도곡, 교향곡, 세레나데)등 다양한 일을 하며 부르주아의 생활 수준과 맞출만한 수입을 벌었으나 갈수록 재정적 위기를 겪으며 독립적 음악가로써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 같은 시기의 음악가 요제프하이든 생의 대부분을 봉건적 하인으로 살았던 반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몇년만에 독립적인 음악가이자 작곡가로서 상당히 성공한 삶을 살았다. 모차르트는 이 둘의 삶의 중간 정도되는, 낡은 사회(봉건 질서)가 강요하는 제약조건들을 거부했지만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한(제국의 궁정과 같이 안정된 수입을 보장해 줄 일거리에 대한 갈망하는) 삶을 살았다.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음악 형식을 모차르트가 창안했다고 할 수 있다.

※ 모차르트는 오늘날 재즈 피아니스트처럼 즉흥곡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출중했는데, 누군가가 "그냥 건성을 하는 듯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연주를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수고스럽게 연주한다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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